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1993년 대구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중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가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신평 경북대 법대 교수. 그가 로비가 횡행하는 사법부의 세태를 고발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원고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신 교수의 판사 재임용 탈락은 당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국정감사로 이어진 바 있다. 그는 이후 변호사 생활과 농사를 병행하다 몇 년 전부터 대학 강단에서 헌법학을 강의하고 있다.● 나도 판사 때 골프접대 받고 기생방 드나들었다, 그러나…
● 엄동설한 판사실에서 판결만 고민하는 ‘성자(聖者) 판사’
● 재판에 국민참여 배제하는 사법부의 오만불손
● 전관예우는 ‘아름다운 법조 질서’?
● 청탁 일삼는 ‘고문판사’와 ‘관선변호 판사’
● 법관징계제도 개혁으로 사법부 ‘과거청산’ 시작해야
● ‘비리 재판’ 막을 통제 시스템을 許하라!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었다. 수해를 입은 곳도 많다. 20년 가까이 경북 경주의 농촌에 살면서 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지어봤다. 올해처럼 큰물이 지거나 태풍이 겹쳐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키는 작업을 할라치면, 그 노역은 끔찍스러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진창에 빠진 두 다리를 어렵사리 옮겨가며 하는 작업은 도시인이 상상하기 힘든 중노동이다. 한 시간 꼬빡 해봐야 한두 평밖에는 벼를 묶어세우지 못한다. 진흙물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온몸을 덮는다.
올해는 장마만 길었던 게 아니다. ‘윤상림 게이트’가 터져 온갖 추문이 쏟아지더니 뒤이어 ‘김홍수 게이트’가 터졌다. 국민은 김씨가 로비 대상인 판사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술과 돈에 취해 있었다”고 한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판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착한’ 국민은 지긋지긋한 장맛비가 끝나 맑은 날이 찾아오면 쓰러진 벼를 일으켜세우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청청한 하늘 아래 풍성한 계절의 회귀를 기다린다. 그때쯤이면 그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불쾌한 소식들은 망각의 조각으로 흩어질 터이다. 언론도 그저 그런 일과성 사건이 되어버린 ‘…게이트’라는 아이템을 재빨리 내던지고 대중의 눈을 끌 만한 사건으로 말을 옮겨탈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사법부의 부정에 분노하면서도 왜 이렇게 빨리 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부정이 생겨나는 근본원인을 작심하고 파헤쳐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부정에 대한 국민의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윤상림, 김홍수 같은 법조 로비스트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나면 사법부가 제자리를 찾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법 부정 혹은 사법 부패는 결코 일과성 현상이 아니다. 윤상림, 김홍수라는 인물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사법 부정은 한국의 사법부나 법조(사법부와 검찰, 변호사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통 ‘법조 삼륜’이라 부른다)에 내재한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또 바깥으로 터져 나오든 그렇지 않든 그 안에서는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 윤상림, 김홍수 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이다.
‘사법 부정’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에서 재판은 국민의 재산, 생명, 신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문제는 그런 재판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절한 제어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이 항상 올바르게 행해진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사법제도는 다른 나라 사법제도에 비해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법관이 자발적으로 올바른 재판을 하기를 막연히 기대하는 것말고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강제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나마 각종 법조비리 게이트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간 꾸준히 진일보해온 덕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되는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었으랴! 국민 여론의 압력이 노도처럼 밀려들어 까딱 잘못하다간 큰일 날 듯하니 그를 구속시키고 국민들에게 사과도 하는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게이트들은 십중팔구 법조 내부에서 은폐되고 말았을 것이다.
과거 이토 히로부미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4자성어를 농락하며 조선 병탄(倂呑)을 정당화했듯, 우리의 사법부는 ‘법조의 세 수레바퀴는 하나’라고 그 동지적 유대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며 자신의 부정과 부패를 가려왔다. 대개 이러한 유의 동질성 강조는 그 속에 음침한 함정을 품고 있는 법이다. 그래서 법조부정이 발생해도 서로 쉬쉬하면서 사건 유발자에게 은밀히 정보를 흘려 사표를 내도록 한 뒤 입을 싹 닦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해왔다. 물론 그들에겐 그렇게 해나갈 분명한 이익의 공유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게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판사생활 동안 접대골프나 기생방 출입에 찌든 적도 있었고, 돈 봉투도 여러 번 받았다. 사건에 직접 관계된 돈을 받지 않았노라고, 또 그런 잘못된 법조문화에 저항하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며 호소하고 싶지만, 이 또한 알량한 자기변명임을 잘 안다. 훗날 변호사를 할 때는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자존심을 굽히고 열심히 판·검사를 접대하기도 했다.
필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비리를 고발한 판사’로 낙인찍혀 사법부에서 쫓겨난 뒤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을 구하는 데조차 애를 먹고, 개업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고작 한 건의 사건밖에 수임하지 못해 참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판사로 있을 때 억울한 판결을 내린 나 자신의 업보 때문이 아닐까’라며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날이 그 얼마였던가.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 업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미치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자존심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변화를 갈망하는 글을 쓰는 이 자리에서 ‘적어도 나는 약정한 액수 이외의 수임료는 절대 받지 않는 변호사였다’ ‘사건과 직접 관련된 판·검사 접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따위의 변명을 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십보, 백보다. 그런 부패구조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필자는 너무나 잘 안다.
또한 갖은 악조건 속에서 훌륭한 판결을 내놓는 판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변호로 귀감이 되고 있는 변호사가 더 많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필자는 언제나 그런 분들을 존경하며 사법부에서 같이 일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엄동설한에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판사실에서 두꺼운 옷을 몇 벌씩 껴입고 세상일을 모두 잊은 채 오직 사건을 파악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던 판사도 지근에서 보았다. 세상에 저런 성자(聖者)가 다시 있을까 하고 탄복하던 기억이 새롭다. 비록 그 정도는 아니어도 열과 성을 다해 판사로서의 직분을 대과(大過) 없이 수행하기 위해 청춘을 바쳐온 많은 판사에게 필자가 지금 쓰는 이 글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것인 줄 잘 안다.
그러나 감히 부탁하자면, 이 글을 사법부에서 늘 말하는 “인격체계가 그릇된 자가 근거 없이 사법부의 ‘염결성(廉潔性)’을 해치는 행위” 따위로는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필자 또한 사법부의 염결성 운운하는,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려가며 사법부를 위한 항변을 늘어놓는 사람 못지않게 사법부에 애정을 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속한 조직을 보호하려는 맹목적·방어적 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과거의 영화롭던 사법부를 다시 회복시키는 지고(至高)의 일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사법개혁이 실패한 까닭
어느 부장검사가 판사, 검사, 변호사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로 건배를 제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하여 언제라도 이 한 몸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조직은 진정한 검찰조직일까, 아니면 자신이 마음대로 생각해낸 왜곡된 마피아식 조직일까.
권위주의 정권이 해체되고 민주화의 열풍이 거세지며 사회 곳곳에서 상당부분 민주화의 결실이 주어졌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연 ‘민주화된 사법부’를 가졌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일례를 들어보자. 지금껏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배심제(陪審制) 혹은 참심제(參審制)의 형태로 재판과정에 직업 법관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참여시키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재판과정에 국민의 참여가 배제되어왔다. 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해왔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만한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우리 대법원은 2003년 상반기까지 ‘우리 국민은 아직 이를 도입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투로 완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오만불손한 자세인가.
과거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측에서 상투적으로 내건 슬로건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어 왔으니 이를 시정함이 사법개혁의 본령’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인가. 결과를 보자. 지금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을 저해하고 부당한 지시를 할 만한 자가 있는가. 또 이들 때문에 이런 ‘파렴치한’ 일이 계속 발생하고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다. 사법부의 독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 사법부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여전히 ‘철밥통’을 누리며 과거에 가졌던 것 이상으로 더 가지며 살겠다는 혐오스러운 의식이다. 사법개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재판권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정하게 행사되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2006년 4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모의재판. 연예인과 영화감독이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려는 유혹은 그 재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끝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일반적 감정이다. 그 재판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바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연고주의가 강하게 지배한다. 판사건 누구건 연고를 무시하고 처신하면 거만하고 무례한 인간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판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린 경험이 몇 번씩은 있다.
지독한 연고주의, 서열주의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인이 설사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더라도 법관이 되는 것을 막았고, 또 법관으로 발령했더라도 중요한 자리에는 배치하지 않으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대한 일제의 변명은 ‘반도 출신들은 연고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연고주의의 실상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다산은 이 책에서 자신이 고을 수령이 된 후 일가친척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어떻게 접대해 인심을 잃지 않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도대체 일가친척 접대가 고을수령의 직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필자가 일본에 유학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가졌을 법한 일본사회가 연고주의에서만큼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수직적 네트워크를 가진 사회이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엄격하게 구별해 네 편, 내 편 가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그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과 상식이 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고 같은 것을 이용해 그런 원칙과 상식을 깨려는 측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대응한다. 그래서 사회는 언제나 예측가능하다.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 되니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아도 살아가기 편하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이런 점을 더욱 깊이 느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법조 브로커가 설쳐서 재판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우리도 연고주의를 극복하고 원칙에 따라 사회가 움직이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상당히 좋아지긴 했으나,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게 솔직히 인정하며 더 노력해야 우리 사회의 장래가 보장될 것이다.
사법시험은 왕조시대의 과거(科擧)를 연상시키며 치러져왔다. 지금은 상당부분 퇴색했지만 사법시험, 흔히 말하는 고등고시에 합격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인증으로 치부됐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특권의식이 자리잡았다. 사법부에서 하는 일은 절대 오류가 없고, 설사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이는 사법부 내부에서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으니 외부인은 여기에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등산을 할 때도 서열에 따라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는 그 지독한 권위주의와 서열의식이 자신의 양심과 법률에 따라서만 재판을 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과 결코 상종할 수 없다.
철밥통 ‘법조 3륜’
그뿐만이 아니다. 법관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용이 터무니없이 베풀어졌다. 사법부에는 어떠한 결함도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분명히 법관의 잘못 때문에 재판이 그르쳐졌는데도, 재판은 정당했고 법관은 잘못을 전혀 범하지 않았다는 상투적인 회답이 민원인에게 돌아갔다. 이런 사건에는 국가배상청구도 허용되지 않았고, 검찰청에 고소해봤자 결과는 늘 뻔했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사건 당사자가 입는 손해는 너무 쉽게 무시됐다.
오직 반복되는 것은 ‘사법부는 완전무결의 조직체’라는 떠벌림이었다. 설사 부패사건이 생겨 문제의 일각이 불거져도 사건 초기단계에서 은폐하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했다. 언론도 협조했다. 검찰은 당연히, 협조 정도가 아니라 ‘공범자’로서 사건의 무마와 은폐에 무소불위의 힘을 기꺼이 빌려줬다.
최근 들어 검찰이 제대로 의식을 갖춘 법무장관들 밑에서 많이 변화했지만 아직은 멀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은 사건, 검사 자신에 대한 평가가 상부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질 수 있는 사건을 제외한 일반 사건에서는 과거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우리 판사들은 다른 나라 사법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왜곡된 질서에 순응하기를 강요당한다. 하지만 순응하기만 하면 장래는 보장됐다. 처음에는 숨 죽이고 발걸음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조심해야 하지만, 엄격하게 설정된 관료체계의 순서에 따라 점점 지위가 올라간다. 후배 법관들은 선배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웬만한 잘못은 조직이 알아서 감싸준다. 기계적으로 한번 정해진 서열은 해당 법관의 잘잘못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철저하리만큼 ‘철밥통’ 구조이다. 이에 판사들은 점점 편안함을 느끼며, 그 조직이 안겨주는 끝없는 안정감에 그게 바로 최선의 조직인 양 환상에 빠진다.
변호사 개업을 해도 전관예우 관행에 따라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식 속에 동료 및 선후배 법관에게서 십시일반으로 특별대접을 받으며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이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기득권이었다. 여기에는 검찰이건 변호사회이건 뜻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다. 재조(在曹) 경험이 있건 없건 많은 변호사는 이런 체제에서 최대의 경제적 수혜자였다. 사건을 처리하는 판·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의뢰인에게 높은 수임료를 당당히 요구하는 게 우리 법조의 현실이다.
이런 문화 양식과 생존 방식에 의문을 품고 어설프게 비판에 나서는 사람은 범법조(汎法曹)의 아름다운 질서를 파괴하는 질서 문란자로, 용서받지 못할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괘씸죄’라고 하지 않는가. 법조계에선 이것이 우스개 말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이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속삭인다. ‘법조 3륜의 어느 하나라도 타격을 입으면 안 된다’고.
현대판 유민, ‘사법 피해자’
이 거대한 기득권체계에 저항하는 자는 지고지순의 사법부가 생각하는 정의, 어쩌면 초헌법적 정의에 따라 처단돼야 할 대상이 됐다.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며 사법부가 이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판사가 자격을 박탈당하는 게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그들은 해당 판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과정에서 헌법 제12조에 따라 보장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하고, 단 한 번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했다. 나아가 언론사 법조 출입팀에 그 판사의 사생활을 조작해 알려주고, 그가 쓴 글은 ‘인격적으로 형편없는 인간의 믿을 수 없는 말’로 둔갑시켜 문제의 확대 재생산을 봉쇄했다. 기자들은 ‘설마 대법원 공보관이 거짓말을 하겠냐’며 그들의 공작에 말려들었다. 속내는 부조리와 모순으로 팽배해 있으면서도 위선과 가식으로 허우대만 잘 챙긴,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이다.
이런 도착된 현실에서 많은 ‘사법 피해자’가 생겨났다. 그들은 피를 토하듯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고충처리위원회도 그들에겐 손을 든 지 오래다. 사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봤자 대답은 뻔하다. 사법 피해자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막막한 투쟁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판을 통해 재산을 다 잃고 가정이 풍비박산났다는 것, 그리고 거대한 공권력과 싸우며 이 사회의 편견에 휘감겨 살아오느라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는 점이다. 기존 법질서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불신감으로 그들 옆에 서면 살의(殺意)가 느껴질 정도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관련 사법부가 가식을 벗어던지고 조금은 진실해질 것을 요구한다. 필자의 눈에 비친 사법부의 관행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한 끼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판결을 팔아버리는 일도 왕왕 있지 않았던가. 재판 날 점 찍어둔 변호사를 가장 뒤에 남게 해 그로부터 식사를 대접받으며 한잔 술로 그날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 회합에서 해당 변호사가 바로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소정외(所定外) 변론’을 행할 때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판사도 인간인 이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실비(室費)니 떡값이니 전별금이니 하는 명목으로 받아들인 돈봉투는 과연 재판부의 노고를 헤아린 순수하고 갸륵한 심정에서 나오는 무채색의 기부일까? 필자가 법관으로 발령받은 후 처음으로 맞은 추석 무렵에 노(老) 변호사 한 분이 봉투를 들고 왔다. 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자 그 분이 보여주던 처량하고 난감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결국 봉투를 받고 말았다. 그런데 점점 봉투를 받는 데 맛을 들였다. 그 후로는 힘든 사건을 잘 판결해줬는데도 인사 한번 오지 않는 변호사는 ‘예의 모르는 변호사’로 낙인찍는 어리석은 판사로 변해갔다.
철면피 판사들
‘김홍수 게이트’에서 적나라하게 불거진 ‘관선변호’는 또 어떤가. 이 용어는 판사 세계에서 은어로 통용된 지 오래다. 사법부에서 선배나 동료 법관이 사건과 관련해 청탁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런 선배, 동료, 후배 법관의 등에다 ‘관선변호인’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란 소위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고문(顧問)판사’란 은어도 있다. ‘고문변호사’에 빗대어 쓰는 말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법원 내에서 설치고 다니며 청탁을 일삼는 판사를 가리킨다. 고문변호사보다는 고문판사의 말이 더 잘 먹혀들거라는 것은 뻔한 이치다. 우리가 좀더 솔직해지자면 법관들의 비리 연루는 이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고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판사실에서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해 돈 봉투가 오가는 등 판결거래를 하는 형편없는 판사도 있다. 이번에 부장판사가 판사실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보도됐으나, 그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판결을 놓고 노골적인 ‘거래’를 행하는 판사도 있다.
피고인을 보석으로 풀어주면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해 변호사가 성공보수금을 제대로 챙길 기회를 주고, 판사실에는 봉투를 갖고 오게 한다. 이런 순환적 거래 패턴을 따르지 않는 변호사에게는 더 이상 은전(恩典)이 베풀어지지 않는다. 혹여 변호사가 깜빡해 실수라도 하면 그 뒤 몇 사건은 ‘각오’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절대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다. 조관행 부장판사의 혐의사실을 살펴봤더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사건과 아무 관련 없으면서도 새 차를 샀다면서 변호사들을 하나씩 호출해 대금 일부를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철면피 판사’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돈, 적어도 몇 백만원의 돈을 들고 들어간 변호사는 그 판사가 아주 중요한 사건에서 틀림없이 좋은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확신한다.
조직의 보호막은 이런 이들에게도 자애롭게 펼쳐졌다. 징계절차는 개시된 적이 없고, 민원인에 대한 회답은 언제나 똑 같았다. 사법부는 여전히 순백(純白)의 청렴한 조직체로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을 감히 제기할 수 없는, 쇳소리 쩡쩡 나는 기관으로 남아 있다.
새로운 사법지도자의 출현
다행히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래 사정이 많이 변했다. 그는 취임 전 “우리 사법부가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당연한 말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수장(首長)이 이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 이래 수십년 세월을 기다렸다. 사법부에는 절대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허황된 논리 속에 부패를 은폐하고 기득권을 챙기기에 급급해온 세월이 그토록 길었다.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말을 다름 아닌 사법부의 수장 될 사람이 했으니 놀라울 수밖에. 그는 또 우리의 사법부가 이제 국민의 사법부로 거듭나야 함을 누누이 말했다. 참으로 옳은 얘기다.
그러나 사법부는 대법원장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법관에게 소신에 따라 재판할 수 있는, 거의 절대적인 헌법상의 보호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이라고 해서 재판과 관련해 법관에게 구체적 지시를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헌법 원칙이고 법치주의의 요체다.
문제는 사법부의 잘못된 관행이 너무 오래 계속됐고, 적지 않은 법관이 여전히 이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장 혼자 깨어 있다고 해서, 그리고 몇몇 훌륭한 법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사법부가 환골탈태하리라는 믿음은 너무나 나이브(naive)하다.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은 국민밖에 없다. 국민이 나서서 ‘열린 사법부’, 그 구성원들의 집단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법부로 바꿔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시급한 과제가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이다. 일제 강점기 과거사 청산은 그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에서, 그리고 광복 후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사정이 다르다. 사법부의 일그러진 구조 아래 피해를 본 많은 사람이 아직도 구제를 호소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 과거사 청산과는 달리 관련 증거도 많이 남아 있다. 혹자는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소송법상의 재심 절차는 그 사유나 기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뿐이다. 기존의 재판이 모두 공정하게 행해졌다는 것을 전제로, 그 재판 후에 형성된 법률관계를 우선하겠다는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시각이다.
우리도 이제 저 불쌍한 사법 피해자들의 말에 한번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인혁당 사건과 같이 정치적인 사유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 사회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시국사건이 아닌 일반의 재판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관심의 영역 밖에 있다. 대법원장의 인식대로 우리 사법부가 때때로 잘못된 재판을 한 게 사실이라면 그 사건이 정치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일반 사건이든 똑같이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사법부 정화를 위한 5대 제안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국가에서 사법 피해자들을 심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이 위원회가 여러 모로 판단해 정말 억울하다고 인정하는 사건에 한해 특별히 바로 재심이 허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그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기존의 탈 많은 법조체계와 별로 연이 닿지 않은 젊은 법조인들과 건전한 상식을 갖춘 시민으로 구성해야 한다. 물론 재심을 허용한다고 해서 바로 구제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법원의 재판을 통해서 그 정당성이 인정돼야 최종적으로 오류가 시정되는 것이니, 현행 헌법상의 사법국가주의에도 어긋남이 없다.
그리고 과거 사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정신에 어긋나게 쫓아낸 법관들에게 다시 한번 그 사유를 심사받을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헌법상의 지위에 있어 법관보다 더 보장된다고 할 수 없는 대학교수에게도(비록 형식적이지만 소명의 기회 등이 이미 주어졌음에도) 재심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새로운 법 제정을 통해 부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사법부가 취해야 할 당연한 조치라고 본다.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내걸었으나 지금껏 진척된 것은 하나도 없다. 더 이상 ‘사법부=무흠결의 완전한 조직체’라는 사법무결점주의가 통용되지 않게 하려면 비위를 저지른 법관에 대한 공정무사한 징계절차가 행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법관징계위원회가 사실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법관의 비위은폐를 도와왔던 점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따라서 법관징계위원회의 구성원을 대폭 바꾸어야 한다. 법관 외의 외부인사가 다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법관의 비위 신고가 접수되면 반드시 법관징계위원회가 소집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지루하게 시간을 끌고 있는 사법개혁 작업의 소산물인 법안들은, 일부 부족한 점이 있지만 실은 과거의 사법개혁 작업과는 그 틀에 있어 차원을 달리한다. 요점은 두 개다. 한국식 로스쿨 창립과 한국식 배심원제 채용이다. 전자는 우리 법조계에 아직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연고주의를 극복해 나간다는 점에서나, 법조인의 지나친 특권의식을 깨뜨리고 시민사회 구성원들과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급변하는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법조계가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다른 대안이 없을 만큼 꼭 필요한 제도다. 후자의 중요성 또한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이 제도를 채용했거나 채용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오직 직업 법관들에게 법적 분쟁의 해결을 맡겨야 하는가.
나아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대한 야당의 완고한 반대 방침에 재고가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 기관이 설치되면 비리를 저지른 판·검사에 대한 진정이 봇물 터지듯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앞으로 법원과 검찰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강력한 기관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역으로 제안한 특별검사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야당이 왜 이 법안에 굳이 반대해, 로비에 취약한 우리 사법체계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사법 피해자들의 한을 외면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 혹 과거에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한 일에 대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는 판단 때문이라면, 그 법에다 시행일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만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권한을 갖는 것으로 못박아도 되지 않을까 한다.
개혁을 위한 배려
숨 가쁘게 얘기를 이어오다 보니 마치 사법부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주지나 않았을지 덜컥 겁이 난다. 물론 그렇지 않다. 처음에 말한 대로 사법부에는 올곧게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온 수많은 법관이 있다. 전체적으로 평가한 사건처리 능률도 뛰어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 제도 아래 사는 이상 몇몇 사람의 선의와 헌신에 기대어 훌륭한 조직운용을 기대하는 대신, 제도적으로 우리 사법부를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게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또 사법부 역시 국민 전체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하에 위선과 가식의 탈 안에 온존시켜온 모순과 부조리를 도려내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법부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다른 나라와 견주어 우리 사법부에 결여된, ‘올바른 재판을 위한 통제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본다.
신 평
● 1956년 대구 출생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영남대 박사(헌법학)
● 1981년제23회사법시험합격, 인천지방법원·서울가정법원·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대구지방법원 판사
● 일본 최고재판소 외국재판관 연수, 히토쓰바시대·게이오대 객원연구원, 미클리블랜드주립대 수학
● 現 경북대 법학부 교수, 앰네스티 법률가위원장, 한국비교공법학회 부회장
● 저서및논문: ‘사법개혁을향하여’ ‘명예훼손법’ ‘한국사법부의근본문제점분석과 그해소방안의모색’ 등
이런 작업의 과정에는 사법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사실 법관만큼 격심한 정신 노동을 하는 직업을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최소한 대학교수에게 인정되는 안식년 제도를 법관에게도 인정해주고,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가령 일본에서처럼 재판부 하나에 법정 하나(일본의 재판부 개념은 우리와 조금 다르기는 하다)가 허용된다면, 법관들은 훨씬 효과적으로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법부의 자정(自淨) 노력과 시스템의 개선 외에 법관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꼭 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선선히 수용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의 축축한 불쾌감이 사라지고 청명한 가을하늘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듯 우리의 사법부도 상쾌한 가을바람 같은 존재로 국민에게 다가가기를 염원한다. (끝)